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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신고확인제 "사업자 장부 왜곡을 조사권도 없는 세무사가 어떻게?"

세무업계 "탈세 부추기는 사회주의적 제도...제도 사각지대도 커"

이성민 기자 | 기사입력 2023/09/07 [13:59]

성실신고확인제 "사업자 장부 왜곡을 조사권도 없는 세무사가 어떻게?"

세무업계 "탈세 부추기는 사회주의적 제도...제도 사각지대도 커"

이성민 기자 | 입력 : 2023/09/07 [13:59]

 

고소득 자영업자의 소득탈루를 막기 위해 도입된 국세청의 '성실신고확인제'가 오히려 납세자들의 성실신고대상자 선정 회피와 탈세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세무대리인을 통해 납세자의 성실신고 의무를 실현한다는 제도 취지와 달리, 현실은 탈세와 회계 왜곡에 취약하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사업자들이 탈세를 목적으로 법인 매출 등 회계와 관련된 일부 세부항목을 의도적으로 누락시키거나 왜곡하는 사례도 적지 않아, 이에 따른 법적 책임이 회계 및 세무신고 업무를 대행한 세무사에게도 고스란히 전가되는 등의 문제도 성실신고확인제의 부작용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세무대리인이 애초에 고용인의 탈세를 조력할 의도가 없음에도, 사업자가 탈세를 위해 작정하고 회계자료를 임의로 누락하거나 왜곡할 경우 조사권이 없는 세무사로선 영락없이 '탈세 공범'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것이다.

 

7일 세무업계 따르면 성실신고확인제가 시행된 이후 납세 주체인 사업자가 세무대리인을 통해 탈세 등을 목적으로 왜곡된 회계 정보를 제공했고, 이를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세무대리인이 성실신고의무 위반으로 직무정지, 과태료 등의 중징계를 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징계 처분을 받은 세무사들 대부분은 자영업자나 법인의 소득탈루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아 성실신고확인제에 규정된 의무사항들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혐의를 받는다. 성실신고확인제 의무를 위반한 세무사는 탈루 액수에 따라 최대 직무정지 2년 이상의 중징계를 받게 된다. 이 경우 사실상 업계에서 퇴출되는 만큼, 평생직을 상실하게 될 정도의 치명상이 불가피하다. 

 

문제는 세무사가 애초에 사업자의 회계 왜곡 및 소득탈루에 가담할 의도가 없었더라도 장부기장 검증에서 고용인의 회계 정보가 일부 누락되거나 왜곡됐을 경우 처벌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사업자가 세무대리인에게 장부기장을 투명하게 전면 공개한다는 보장이 없다 보니, '조사권' 등 법적 구속력이 없는 세무사로선 사업자의 의도적 장부 누락까지 모두 검증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서울 서초동 소재의 한 세무법인 소속 세무사는 <납세정의신문>과의 취재에서 "현행 신고확인제는 유사 시 세무사에게 과도하게 책임을 지우는 측면이 있다"면서 "사용자가 작정하고 장부를 누락시키면 세무사로서는 확인서 제출에 따른 법적 처벌 리스크를 피해갈 수 없다. 당초 사용자가 세무대리인에게 회계 장부를 투명하게 공개토록 하는 법적 장치가 마련되거나, 세무사가 사용자에게 자료 요구 내지는 면밀한 회계 조사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하는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고 했다. 

 

또 시흥시 소재의 한 세무법인 소속 세무사는 "세금탈루 등의 목적에 따라 임의로 제출된 장부에 대해 검증이 부실했다는 이유만으로 징계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세무사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조사권이 없는 세무대리인이 사업자가 제출한 부정확한 자료를 토대로 장부를 마감하고 성실신고확인서를 제출했다면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상존한다. 현행 성실신고확인제는 제도적 결점투성이"라고 짚었다. 

 

성실신고확인제는 수익이 일정규모 이상인 개인사업자나 소규모 법인이 소득세 신고 시 세무사를 통해 장부기장 내용의 정확성 여부를 검증받아 성실신고 확인을 받도록 하는 것으로, 사업자나 법인의 회계 투명성 제고와 성실한 신고를 유도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과거 세무검증제가 사정기관의 세무조사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전 업종에 대해 연간 기준수입액 이상인 개인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성실신고확인제'로 변형 도입된 것이다. 

 

세무대리인이 작성한 성실신고확인서를 제출하지 않는 등 해당 제도에 규정된 사항을 위반할 경우 산출세액의 5%를 가산세로 부담하는 한편, 무기장가산세가 부과되고 세무조사 대상자로 지정된다. 

 

다만 성실신고확인제 또한 구 제도의 유물에 불과하다는 사회적 인식도 적잖다. 이러한 제도적 취지의 이면에는 자유시장경제 논리에 반하는 사회주의적 성격이 짙게 녹아있다는 것. 국제사회에서 자유시장경제 체제가 보편화되는 시점에서 이같은 검열 제도는 사업자들과 중소규모 법인들의 경제활동을 위축시키고 자칫 감시기관의 권력 비대화를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퇴행적이라는 게 조세업계 일각의 비판이다.    

 

아울러 현행 제도상 허점도 엄존한다. 일례로 법인이 아닌 개인사업자의 경우 증빙과 금융계좌 내역이 일치하지 않은 경우가 허다한 것으로 파악됐다. 세무업계에 따르면 개인사업자가 설령 사업용 계좌를 쓴다고 해도 그 밖에 개인 금융거래 내역이 많은 데다, 법적으로 사업용 계좌를 사업용 거래 용도로만 쓰도록 규정된 바도 없어 현실적으로 법인처럼 증빙과 금융계좌 기말 잔액이 동일시되기 힘든 실정이다. 이렇다 보니 세무사들은 개인사업자의 성실신고확인서를 작성하기까지 고충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이와 관련, 익명을 요구한 한 세무사 A씨는 "당초 이런 중차대한 성실신고확인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라면 적어도 세무업계의 의견부터 수렴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라며 "세무라는 것이 변수도 많고 복합적인데, 현실성 있는 제도를 도입하려고 했다면 사전조사나 연구를 충분히 거치고 난 뒤에 도입했어야 기본이지 않나. 현행 제도는 이러한 기본적인 부분들을 망각한 악의적 제도"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또 다른 세무사 B씨는 "성실신고확인제는 결국 납세자의 성실신고대상자 선정을 회피하기 위해 오히려 매출누락의 수단으로 작용되는, 이른바 탈세를 부추기는 조세제도로써 전형적인 탁상행정 사례"라며 "탈세를 막자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제도적 사각지대가 방치된 데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세무사들과 사업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고 현행 제도가 현실성 있게 개편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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