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보이스피싱 모르고 체크카드 건네준 피해자 처벌 못해”
최고관리자 | 입력 : 2021/05/04 [13:30]
‘대출을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보이스피싱 일당에게 체크카드를 건넨 피해자를 전자금융거래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1, 2심은 대가를 약속받고 체크카드를 건네준 행위를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으로 보고 처벌 대상이라고 판단했지만, 대법원은 달랐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ㄱ씨에게 징역 1년6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제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3일 밝혔다.
ㄱ씨는 2019년 6월 ㄴ씨가 보낸 대출 광고 문자를 보고 카카오톡으로 대출을 문의했다. ㄴ씨는 ㄱ씨에게 대출 원금 또는 이자 상환은 ㄱ씨의 계좌와 체크카드를 이용해야 한다며, 카드를 자신에게 맡길 것을 요구했다. ㄱ씨는 ㄴ씨에게 대출에 필요한 서류를 보낸 뒤 대출금을 받을 계좌번호와 카드, 비밀번호 등 알려줬고, 체크카드도 택배로 전달했다. 이후 ㄴ씨는 카드와 연결된 ㄱ씨 계좌에서 돈을 인출했다. 검찰은 “ㄱ씨가 대가를 바라고 ㄴ씨에게 체크카드를 빌려줬다”며 기소했다. ㄱ씨는 재판에서 “ㄴ씨의 말에 속아 그의 지시를 따랐을 뿐 체크카드가 보이스피싱에 이용될 것이라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ㄱ씨는 ㄴ씨에게 ‘(대출을 해준다는 것이) 보이스피싱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ㄱ씨는 보이스피싱 피해자이기도 했지만, 또다른 사건에서는 지인에게 1억8천여만원을 편취한 사기 혐의도 받고 있다.
1, 2심은 “ㄱ씨가 체크카드를 빌려준 것은 저금리 대출 등 금융거래상 이익을 얻기 위한 것”이라며 “체크카드 대여행위와 금전대출 이익이라는 대가는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다”고 판시했다. 이어 “ㄱ씨는 ㄴ씨로부터 대가를 받기로 약속하면서 체크카드를 빌려준 것”이라며 “체크카드가 보이스피싱 등 범행에 사용되는 것을 알지 못했더라도 죄가 성립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ㄱ씨가 보이스피싱에 사용된다는 점을 모르고 체크카드를 빌려줬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ㄱ씨를 처벌하려면 경제적 이익을 수수·요구 또는 약속하면서 체크카드를 ㄴ씨에게 빌려준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며 “ㄱ씨는 ㄴ씨의 기망(속임)으로 카드를 내어 준 사람으로 대출의 대가로 체크카드를 빌려줬다거나, 당시 대가를 인식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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