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악 척결을 위해 검찰 수사나 재판에 협력한 뇌물·조직 범죄 공범 등에게 면책·감경 혜택이 주어지도록 법에 명시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영미법계에서 플리바게닝으로 통칭되는 사법협조자 면책 제도를 대륙법계 국가들이 자신들의 실정에 맞게 도입 중인 추세를 고려해, 한국형 면책 제도를 고민하자는 것이다.
◇"사법협조자 법정 면책 보장해야" = 대검찰청(총장 이원석)은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 예그리나홀에서 ‘사법협조자 형벌제재 감면제도’를 주제로 제1회 형사법아카데미를 개최했다. 참석자들은 제도 도입의 필요성과 프랑스·독일·일본 등 1990년대 이후 제도를 부분적으로 도입한 대륙법계 국가의 사례 등을 검토하면서, 한국에 적용할 방안과 부작용 최소화 방안을 논의했다.
이경렬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사법협조자 형벌 감면제도 도입의 필요성 및 타당성’을 주제로 발표하면서 “수사협조에 따른 형사면책을 확실하게 보장해 사법협조를 적극 유도할 수 있는 방향으로 형사면책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행법에 자수한 사람이나 특정 범죄를 신고한 사람에게 형벌을 감면할 수 있는 제도가 일부 도입 되어 있지만, 재판에서 실제로 형이 감면 될 지 여부가 전적으로 판사 재량에 맡겨진 임의적 감면이라는 한계가 있다”며 “내부가담자로부터 협조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공범의 회유·협박을 견뎌낼 정도의 법률상 혜택을 보장해 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감면제도가 수사편의를 위한다는 비판이 있지만 과학 수사만으로 모든 범죄를 척결할 수 있다는, 현실을 도외시한 이상론에 빠져서는 안 된다”며 “대상 범죄와 감면 요건 등을 엄밀하게 규정하고, 사후적 통제 수단을 마련함으로써 남용 우려는 불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한국이 UNTOC(국제연합 초국가적 조직범죄 방지 협약) 당사국인 점 등을 고려하면 (장기적으로는) 대상이 국가적 조직범죄 실체규명에 실질적 협력을 제공한 모든 사법협조자로 규정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조직·뇌물·마약 범죄 증언자 소추면제…"검사가 형사면책 제안할 수 있어야" = 미국 검사 출신인 원재천 한동대 국제법률대학원 교수는 ‘미국에서의 사법협조자 형벌제재 감면제도 운영 사례’를 주제로 발표하면서, 플리바게닝을 한국에 접목 하기 위한 법 개정안을 제안했다. ‘내부증언자 소추면제제도 도입’을 위한 형사소송법 제247조의2를 신설해 ‘피의자의 진술이 범죄 규명에 없어서는 안 될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검사가 형사재판 증언을 조건으로 불기소 처분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하되, 법정 증언을 할 경우에는 허위가 아닌 한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강제하자는 것이다. 범위는 조직·마약·뇌물 범죄 등이다.
서강원(42·변호사시험 1회) 서울중앙지검 검사는 “마약·부패 등 특정를 넘어 보편적 사법협조자 형사면책 제도의 도입을 고려한다면, 폭행·상해·절도·사기 등 개인적 법익을 침해하는 범죄의 경우에는 제도를 제한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며 “범죄 피해자가 뚜렷하게 존재하는 상황에서 피해자 의사와 무관하게 수사기관이 범죄자의 형사책임을 면책하면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수사권의 한계를 벗어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사법협조자 형사면책 관련 입법론은 대체로 진술의 신빙성을 높이는 방법과 형사처벌 감면 방법 등에 머무는데, 자백 진술을 이끌어내는 수사 과정이 위법수집증거 시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조문을 추가하면 적법성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 대륙법계도 도입… 일본 '특정범죄에 제한적 허용' 프랑스 '일반 범죄로 확대' = 구재연(42·변호사시험 3회) 대구지검 검사는 ‘일본의 수사 공판협력형 협의 합의제도와 형사면책제도’를 주제로 발표하면서 “일본은 검사가 적정한 절차에 따라 사건관계인의 진술증거를 수집할 수 있는 방안을 형사소송법에 도입해 2018년 6월부터 시행 중”이라며 “특히 내부자 진술 획득이 꼭 필요한 조직범죄·재정경제범죄·마약범죄 등 특정범죄를 열거해 허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협의·합의제도’에 대해서는 “검사가 협력을 조건으로 불기소, 공소취소, 구형 감경 등 유리한 처분을 제공하기로 피의자·피고인과 합의할 수 있다”고, ‘형사면책제도’에 대해서는 “증인이 자신에게 불리한 사항에 대한 증언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대신, 그 증언을 해당 증인에 대한 유죄의 증거로 사용해 처벌할 수 없도록 하는 방식”이라고 소개했다. 김희균 서울시립대 로스쿨 교수는 프랑스 제도를 설명하면서 “처음에는 테러범죄에 국한돼 도입됐지만 점차 일반 범죄로 확대됐다”며 “범죄에 가담한 사람이 범행을 중지해 피해를 방지하거나 공범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검거에 기여한 경우 형을 감면할 수 있다고 법에 명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 대검 '형사법아카데미' 재개…형사·검찰 제도 연구 박차 = 사법협조자 형사면책은 기업부패 등 조직 범죄에 가담한 사람이 범죄 방지나 공범 검거에 결정적 증언을 한 경우 형사 책임을 면제해주거나 형량을 감면해주는 제도다. 큰 틀에서는 플리바게닝으로 불리며, 미국·영국 등 영미법계국가에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법무부가 2011년 형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해 제도 도입을 추진했지만, 제18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었다. 이후 대검 미래기획단이 2016년 정책연구를 진행하고, 검찰개혁위가 2018년 권고안도 냈지만 모두 불발됐다.
대검은 2005년부터 매월 학계와 실무가들이 검찰 제도와 외국 제도를 비교·분석하는 ‘형사법아카데미’를 운영했지만, 2019년 5월 이후 코로나 팬데믹 여파 등으로 중단했었다. 올해부터는 분기별로 세미나 형식의 아카데미를 개최해 학계와의 교류와 형사사법절차 연구를 강화할 방침이다. 4년여만에 재개된 이날 제1회 세미나에는 검찰과 학계 관계자 외에 로스쿨생과 법대 학부생 150여명이 참석했고, 이정민 단국대 법학과 교수·조성훈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등도 토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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