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상속세 개편 '지지부진' 왜...20년 넘은 '묵은지 세법' 손질 시급물가변동 등 경제상황 시시각각 변하는데 현행 상속세, 공제 등 20년 넘게 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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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상속세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주문이 속출하고 있지만, '과세체계 대수술'을 예고했던 현 정부가 방대한 개편안 작업 등을 이유로 연내 상속세 개편은 어렵다는 입장을 내비치면서 세제 개편 의제가 당분간 공전할 전망이다.
그간 정·재계와 사회 각계에서는 상속세와 그에 딸린 공제제도 등 낡은 과세체계가 20년 넘게 유지되고 있는 만큼, 현 국가경제 실정에 걸맞는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당초 세제 개편 의지가 확고했던 현 정부가 최근 상속세 개편을 놓고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담당 정부부처인 기획재정부는 과세체계 개편안 마련까지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정부가 내년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부자 감세' 비판 등을 의식해 속도조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의문이 분출한다. 여당인 국민의힘의 총선 과반 승리로 국정 동력을 확보해야 하는 현 정부로선 국정지지율 관리가 필수다. 따라서 용광로 총선 국면에 접어드는 올 하반기 쟁점이 내재된 세제 개편을 강행하는 것은 무리수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상속세와 그에 따른 공제 기준까지 총체적으로 손봐야 하는 만큼, 정밀하고 촘촘한 과세체계를 수립하기 위해선 숙고가 불가피하다는 게 기재부의 설명이다.
현행 세법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30억 원 초과 시)로, 직계상속 최고세율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세율이 45%인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이는 지난 1999년 과세기준이 '50억 원 초과→30억 원 초과' '최고세율 45%→50%'로 강화된 이후 현재까지 20년 넘도록 유지되고 있어, 대국민 조세 부담 경감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 해외 주요국과 간극이 크다는 지적이다. 기업승계 시 상속세 최고세율도 최대주주할증을 감안하면 무려 60%의 최고세율이 적용된다. 이는 OECD 가입국 중 최고로 높은 수준이어서 기업계에선 '징벌적 과세'라는 볼멘소리마저 나온다. 천문학적 납세로 국가 재정을 견인하고 있는 기업들에게 가혹한 처사라는 것.
아울러 막대한 상속세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통상 5억 원이 공제되는 '일괄공제'와 최대 30억 원까지 공제되는 '배우자상속공제'가 적용되고 있지만, 이 또한 지난 20여 년 동안 경기 흐름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묵은지 과세제도'라는 점에서 손질이 시급하다는 제언도 끊이지 않는다.
실제로 재계에서는 상속세 개편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12일 기획재정부에 상속세와 증여세 하향 조정을 요구하는 세제개선 건의서를 제출한 바 있다. 해당 건의서에는 상속·증여세와 관련해 ▲과표구간 및 일괄공제 한도 조정 ▲'유산취득세' 전면 도입 등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OECD 23개국 중 무려 19개국이 채택하고 있는 '유산취득세'는 피상속인 개인이 취득하는 재산 규모에 따라 세액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상속자산 총액을 과세 기준으로 삼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행 '유산세'에 비해 합리적이라는 평가다. 유산세 방식은 복수의 피상속자에게 재산이 분배된 경우에도 동일한 과세 기준이 적용되는 만큼, 피상속자들의 납세 부담이 크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은 납세정의신문과의 취재에서 "지난 20년 동안 물가가 꾸준히 오른 데다 국민 거주권과 직결되는 부동산 시세까지 녹록치 않은데 국민들의 조세 부담은 가중되는 실정"이라며 "낡은 세법을 조속히 개편해 일반 국민과 기업에 대한 과세 수위를 낮출 필요가 있다. 특히 미국은 세액공제 및 증여·상속세 면제 구간을 물가 변동폭에 따라 유동적으로 조정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관세체계를 벤치마킹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고 입법기관인 국회에서 이를 위한 입법·개정 노력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부는 과세 개편안 마련까지 여러 선결과제가 산적해 있어 연내 추진은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당초 내년 세제 개편안 시행을 목표로 올해 유산취득세 도입안 마련 등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달 8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아직까지 사회적인 공감대 형성이 먼저 필요하다"라며 "배우자, 자식에 대한 공제 등에 대해서 모든 부분을 함께 건드리고 조정을 해야 되기 때문에 너무나 큰 작업"이라고 올해에 상속세에 대한 전반적인 개편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 한 관계자도 세제 개편 지연에 대해 "현행 상속세를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골자로 국책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라며 "해외 사례 등을 토대로 세제 개편 근거를 마련해야 하고, 그에 따른 법률·기술적 검토 작업도 거쳐야 한다. 뿐만 아니라 상속세와 관련된 인적공제 체계까지 두루 손봐야 하는 방대한 작업이다 보니 연내 처리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